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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기억이 나를 본다
Exhibition Poster
기간| 2025-09-13 - 2025-12-14
시간| 09:00am - 05:30pm
장소| 무안군오승우미술관/전남
주소| 전남 무안군 삼향읍 왕산리 1020
휴관| 월요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61-450-5481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금혜원
나현
이세현
임흥순
김설아,마리얀토(Maryanto), 아리프 부디만(Arief Budiman)
정보수정요청

전시정보


  • 금혜원 가족사진-1974 식탁 위의 꽃병
    1974 디지털 프린트2018 45×54㎝

  • 금혜원 가족사진-1974 장식장 Family Photo-1974
    2018 Display Cabinet, 디지털 프린트 54×45㎝

  • 김설아 신화가 거주하는 장소 The place where the myth dwells
    2024 인쇄된 종이에 연필 드로잉 70×105㎝

  • 마리얀토 Anthropogenic
    2019 Acrylic on Canvas 200×300㎝
  • 			기획의 글
    
     
    
    1. ‘기억이 나를 본다’
    
    요즘 한국 전쟁이나 여순 사건, 제주 4.3 항쟁, 5.18 민주화운동처럼 아직도 밝혀지지 못하고 있는 역사의 진실과 잊혀진 희생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아카이브 미술’이 한참 부상하고 있다. 할포스터(Hal Foster)는 동시대의 ‘아카이브 미술’을 거론하면서, 이들의 자료들이 사실이나 진실을 증언하는 공식적인 아카이브의 성격을 위반하고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되면서, 사실적이지만 허구적이며 지표성을 내포하지만 재구성되며 이러한 아카이브들이 혼재되어 배열되는 특징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이처럼 작가의 감정이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된 아카이브 미술은 기존의 실증적 역사를 뒤흔들면서 망각된 진실이 노출되도록 유도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아카이브 미술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이번 ‘기억이 나를 본다’ 전시는 한국의 금혜원, 김설아, 나현, 이세현, 임흥순 작가와 인도네시아 아리프 부디만과 마리얀토 작가를 초대하여 2000년 이후부터 부상하기 시작한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동시대 아카이브 미술 경향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전시이다.
    
    전시 주제인 ‘기억이 나를 본다’는 역사와 기억, 자연과 죽음이 서로 카멜레온처럼 녹아들어 있어서 ‘눈을 뜨고 나를 따라오는’ 과거의 기억은 현실 속에 너무 가까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스웨덴의 국민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Tomas Gösta Tranströmer, 1931~2015)의 시 제목에서 가져온 것이다.
    
     
    
    2. 포스트 메모리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라고 선언했고, 어떤 언어나 이미지로도 그 실재를 표현할 수 없었던 이 시기는 ‘영점 시대’라고 일컬어졌다. 하지만 ‘아무것도 재현할 수 없는 시대라는 절멸의 선언은 독일민족의 모든 전쟁 범죄를 덮고 가해자로서의 낙인을 회피하기 위한 ‘나치-방법론’(NS-Methoden)과 겹쳐지면서, 유대인 학살과 관련된 사진이나 영상 등의 아카이브와 재현의 이미지에 관한 커다란 논쟁이 일어난다.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들이 스펙터클한 사회에서 소비되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 것인가? 그러나 이미지로 재현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며 타자의 고통
    
    과 동일시하고 희생된 이들을 애도할 수 있는가?
    
    재현이 부재하는 황무지에서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던 이들은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니라 사진이나 인터뷰, 기록물, 영상 등의 매체로 이를 대면했던 ‘이후 세대’(generation after)의 작가들이었다. ‘이후 세대’ 작가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개인적으로 접하게 된 파편적 이미지로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알게 되었으며, 따라서 이들의 재현방식은 실증적 역사의 기록이라기보다 조각난 역사를 상상으로 메우면서 희생자들과 동일시하기 위한 여러 방식들과 전략들을 동원한다. 예를 들면 개인의 상상력을 통해 사라진 역사의 틈을 잇기, 혹은 잊혀지거나 금지된 아카이브를 찾기 위해 탐험하기, 발견된 파편들을 몽타주, 혹은 재-몽타주하고 재구성하여 다르게 해석하기 등의 방법이 그것이다.
    
    비교문예학자인 마리안느 허쉬(Marianne Hirsch)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서구권에서 출현한 이러한 ‘이후 세대’의 아카이브 작업의 특성을 정리하면서 ‘포스트 메모리(post memory )’라는 새로운 개념을 내놓았다.
    
     
    
    3. ‘재현 불가능한 것’을 재현하기
    
    - 증언, 아카이브 열병, 재몽타주에 대한 사유
    
    정치적 폭력이나 종교 혹은 이념 분쟁으로 학살되거나 기후·산업 환경의 재난으로 인해 대규모로 발생한 희생자들의 사라져버린 개인적인 삶의 흔적을 다루는 사후 아카이브 작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러한 재현이 비극의 실재를 완벽하게 나타내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데리다가 이야기한 것처럼 재현 불가능한 사실이 오히려 아카이브에 대한 열망이 끊임없이 지속되도록 에너지를 공급한다. 이러한 포스트 메모리 작업은 절멸되어 부재한 것들을 과거로부터 현재로 소환하여 집단의 기억으로 의미화 시키고, 아카이브 너머에 존재하는 타자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제의와 함께 애도의 과정을 거쳐 처참하게 학살된 이들의 영혼을 숭고의 위치에 머무르게 하는 일에 해당한다. 이러한 과정들은 망각된 타자(잊혀진 민중)가 현실의 세계에서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는 것을 의미하며, 세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인류 본연의 윤리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포스트 메모리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기된 허쉬의 ‘포스트 메모리’의 개념과 함께 ‘부재에 대한 재현’의 담론으로 전개되었던 데리다의 ‘아카이브’ 기억과 관련된 무의식, 그리고 디디 위베르만이 주장했던 노출되지 못했던 민중을 대면하는 재현의 방식과 인류의 윤리적 성찰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허쉬가 ‘포스트 메모리’라는 새로운 개념을 내놓게 된 계기는 클로드 란쯔만(Claude Lanzmann)이 제작한 〈쇼아〉라는 영화의 독특한 재현 방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영화는 오류의 가능성으로 비판 받고 있는 사진이나 영상 아카이브 이미지의 사용을 거부하고 쇼아 생존자들의 증언만으로 구성되었다. 아카이브에서 이미지보다 ‘증언’의 우위를 주장하는 란쯔만의 〈쇼아〉는 ‘가스실이 존재했다는 증거는 부재한다’는 부정주의나 재현 자체를 금지하는 자들에게 건네는 일종의 재현의 방식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텔레비전 방영물로도 나갔는데 시청자들 사이에 유대인 학살 흔적의 절멸주의에 대한 비판과 논쟁이 크게 일어났고, 이는 허쉬의 ‘포스트 메모리’라는 개념이 나오게 된 배경이 되었다. 〈쇼아〉에서 희생자들의 ‘증언’으로부터 포스트 메모리 아카이브의 한 가지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데, 그것은 파편적이거나 뒤섞인 증인의 기억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참상에 대한 제스처나 표정, 침묵들의 틈을 시청자들이 상상이나 개인적인 재구성을 통해 희생자들과 동일시를 이루면서 참상의 실재에 좀 더 다가가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이후 세대’들이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된 비극적 참상에 대한 고통으로부터 생겨나는 죽음충동이라는 무의식적인 측면이다. 자크 데리다는 아카이브 자체의 작동원리를 ‘죽음충동’으로 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아카이브 구축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현상을 ‘아카이브 열병’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아카이브는 언제나 사후적으로 구성되는 것인데, 기억의 위기를 붙잡으려는 열망으로부터 형성된 정동(Affect)이 쾌락의 원칙에 의해 망각이라는 죽음충동으로 진행되면서 아카이브가 구축되는 것이다. 아카이브 미술은 실재의 완벽한 재현이 불가능하므로 반복적으로 재구성되는데 이를 통해 경험 세대의 실증적 역사에서 벗어나 그 고통을 재빨리 소비하지 않고 지속시키면서 서서히 ‘집단의 기억’이라는 층위로 이동시키게 된다. 데리다의 주장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반복적으로 구성되는 비극적 희생에 대한 아카이브 작업은 다른 대상을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죽은)타자가 말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하고 그의 기억이 집단의 기억으로 의미화되는 애도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절멸되어 사라진 민중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디디-위베르만이 제시했던 재몽타주 이미지이다. 위베르만은 민중을 재현하는 일의 난점은 민중이라는 것과 이미지라는 것 모두 모순과 다층적이고 이질적인 요소들을 배태하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고 본다. 이 점은 한국의 민중미술 작가들이 ‘투시화된 노동자와 농민’의 모습으로 전형화된 민중의 이미지를 재현했던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민중의 개념에 대한 디디-위베르만의 새로운 제안은 1944년 8월,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라고 불렸던 특별작업반의 일원이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의 절멸 수용소에서 목숨을 걸고 비밀리에 찍은 네 장의 사진과 같은 것들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러한 사진이나 영상의 이미지들은 거칠게 잘리고 불안하게 흔들리며 보잘것없어 보이는, 역사적 현실의 매우 작은 편린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처럼 ‘미미한 이미지’, ‘지나가는 이미지’, ‘반딧불 같은 이미지’들이 재몽타주 되면서 이를 본 관람자들이 “상상 불가능한 것의 감정을 거쳐 획득한 상상력”을 통해 역사적 진실에 가깝게 다가가게 된다는 것이다. 디디-위베르만의 ‘재몽타주 된 이미지’에 대한 사유는 사진과 영상에 관한 포스트 메모리의 또 다른 재현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4. 한국의 포스트메모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은 나치의 절멸정책에 의해 증거들이 거의 소각되어버렸고 또한 인류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잔인한 행위였기 때문에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를 재현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세대’의 포스트 메모리 작가들은 ‘재현 불가능한 것을 재현하기’ 위해 목격자의 증언이나, 사라진 아카이브 탐색하기, 그리고 ‘존더코만도’들이 목숨을 걸고 남겼던 불안한 이미지와 같은 파편들을 상상을 통해 재구성하기 등을 통해 진실의 역사에 다가간다. 서구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얼마 되지 않아 게하르트 리히터나 안젤름 키퍼,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등 포스트 메모리 작가들이 등장한 반면, 한국은 2000년 이후가 되어서야 망각된 역사를 재현하는 포스트 메모리 작가들이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한국 전쟁의 수많은 실종자들, 여순 사건이나 제주 4.3 항쟁 당시 처참하게 수장되어버린 희생자들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에서 아직도 찾지 못한 수백 명의 행불자들과 같이 망각되어버린 민중들을 재현하는 일의 난관은 서구의 포스트 메모리 담론들로부터 그 선례를 찾을 수 있으며, 우리는 이번 초대된 작가들의 작품에서 ‘재현 불가능한 것들’을 재현하는 방식의 특징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박현화 (미술사학자, 무안군오승우미술관장)
    
     
    금혜원 Keum, Hye-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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