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2025-11-08 - 2026-0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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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 10:00~18:00 |
| 장소| | 부산현대미술관/부산 |
| 주소| | 부산 사하구 하단동 1149-37 |
| 휴관| | 월요일 |
| 관람료| | 무료 |
| 전화번호| | 051-220-7400 |
| 사이트| | 홈페이지 바로가기 |
|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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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수정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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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박한나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현대 사회에서 ‘공원’은 휴식을 상징하는 장소이다. 도심의 삭막함 속에서 공원은 생명력과 싱그러움을
불어넣으며, 때로는 쉼과 평온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의 이면에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조용히 작동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사피엔스(Sapiens)』에서 원시 농경사회에 살던 인간이
오히려 현대인보다 더 많은 여유와 쉼, 그리고 건강을 누렸다고 지적한다. 당시 인간은 일정한 시간표나
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의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노동과 휴식을 조율하며 살아갔다. 반면, 도시와
산업 구조가 발달하면서 일과 쉼은 명확히 분리되었고, 현대인은 점차 정해진 틀 안에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공원은 이러한 구조 속에서 휴식의 공간으로 기능하지만, 동시에 현대인의 삶을 일정한
방식으로 유도하는 하나의 장치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마치 테라리움 속 생물처럼 일터와 공원을
오가며, 체제의 논리에 자연스럽게 편입된 채 자각 없이 일상을 소비한다.
문소현 작가의 〈공원 생활〉(2016)은 바로 이 지점에서 사유를 출발시킨다.
이 작품은 인형극 형식을 빌린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작가 특유의 그로테스크하고 날카로운
시선이 녹아 있다. 직접 만든 인형을 조금씩 움직여 촬영한 정지 이미지들을 연속적으로 배열함으로써
움직임을 구현하는 스톱모션 촬영 기법은 인형의 수공예적 질감과 함께 조작된 세계의 인공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이 영상을 12개의 독립적인 장면으로 분절하고, 각 장면 간의 연결을
일부러 단절함으로써 관객이 익숙하게 인식해 온 서사의 흐름을 해체한다. 그리고 분절된 영상들은
대형 스크린과 크고 작은 모니터들을 통해 동시적으로 상영하고 전시 공간 전반에 걸쳐 배치한다.
모든 영상은 다량의 각목으로 구성된 구조체 위에 설치되어, 관객이 일정한 시선을 유지한 채 여러
화면을 ‘감시’하듯 바라보게 만든다. 영상의 주조색은 흑백이며 각 장면은 서로 다른 효과음을 출력하며
시청각적 몰입감을 강화한다. 이러한 장치는 단순한 영상 전달을 넘어, 조직화된 사회 내부 구조를
감각하도록 유도하는 연출적 장치로 기능한다.
내용적으로도 이 작품은 공원을 배경으로 무표정한 마스크를 쓴 인형들이 삼삼오오 모여
반복적인 행동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고기를 굽고, 투계를 벌이는
장면들은 언뜻 보기에 평범한 여가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움직임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고
불안정하다. 이 인형 군상은 놀이를 즐기는 주체가 아니라 체제 속에서 낙오된 존재로, 죽음마저도
스스로 택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인물로 제시된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반복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의 잠식된 상태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공원 생활>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표면 아래를 비춘다. 겉보기에는 평온한 공원이지만,
그 이면에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통해 우리가 당연시해 온 일상과 현실의 기반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고발한다. 문소현은 시간, 장소, 군중, 일상과 같은 현실의 기본 단위들조차 허구적인 질서에 의해
조작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우리가 ‘정상’이라고 여기는 세계가 실은 유령 같은 껍데기에 불과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통찰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마르크스의 유령들(Specters
of Marx) 』에서 말한 “현실보다 더 실제적인 유령들(specters more real than the real itself)”
이라는 개념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데리다는 선형적 시간, 명확한 정체성, 안정된 구조를 전제로 하는
현실 인식이 이미 유령처럼 불안정하고 허구적임을 지적한다. 그의 말처럼, “미래는 항상 유령과 함께
도착한다.” 우리가 믿는 시간의 흐름조차 반복과 지연, 부재 위에 세워진 허상일 수 있으며, 문소현의
영상은 바로 이 허상 속에 안주하는 현대인의 실루엣을 무표정한 인형 군상으로 형상화한다.
<공원 생활>은 제목이 주는 평화로운 인상과는 달리, 우리가 당연시 여겨온 공간과 일상의
감각이 어떻게 조작되고 소비되며, 무력화되는지를 묻는 작품이다. 한 점의 작품이지만, 전시 공간
전체를 점유하는 설치 방식을 통해 관객은 일상의 구조와 질서를 감각적으로 경험하고 다시 사유할 수
있다. 전시는 ‘휴식’이라는 이름 아래 은폐된 자본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얼굴을 조용히 마주
보게 한다. 그 얼굴은 유령처럼 무표정하고, 공원은 하나의 테라리움처럼 투명하지만 닫혀 있는 세계다.
*출처: 부산현대미술관